이런저런 이야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뜻 미륵 부처님 명호 석가모니 비로자나 노사나 약사여래 석불 목불 좌상 미연 스님 사리

준비된자 2021. 3. 12. 22:06
반응형

여래, 부처님, 부처 불佛, 절 만卍


석가모니, 미륵은 부처님의 명호입니다.
부처님은 한분만 계신 것이 아니라 여러 부처님이 계십니다.

들어보긴 했는데?
네 사극등에서 자주 봤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가 아닌 극락세계의 부처님입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불'
아미타 부처님은 과거 법장보살 때 48원을 세워 모두 이룬 뒤 극락세계의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중 18째의 염불왕생원은 "불국토에 태어나려는 자는 지극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 염하면
왕생하게 될 것"이라고 하여 중생들에게 염불을 통해 왕생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극락왕생 하소서"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는 귀의한다는 의미로 부처님의 위엄과 덕망에 마음을 기울여 믿고 의지한다는 의미이고,
'아미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에게 보시하고 염불하여 극락에 가고자 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극락은 모든 괴로움과 고통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곳으로써 극락으로 가기 위해
부처님과 보살님께 불공을 드리는 것입니다.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에 빠져든 심청이' 아시죠?
부처님께 공양미를 바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함이지만 뺑덕어멈이 가로채 심청이의
아버지는 눈을 뜨지 못합니다. 나쁜 뺑덕어멈

공양은 쌀로만 하는것이 아니라 모든게 다 가능합니다.
촛불공양 향공양 등등 많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수기를 준 연등여래의 경우 부처님이 되기 전에
다른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온몸에 심지를 꽂아 등불공양을 한 후 부처님이 되었습니다.
오래전에 불교성전에서 봤던 기억이라 어렴풋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부처님은 '불', '여래' 등으로도 말하곤 합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부처님, 석가모니여래)

약사여래

우리나라에는 여러 사찰이 많은데요,
이 절마다 주불이 따로 있습니다.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약사불, 노사나불, 아미타불 등 따로 모시는 절이 있는가 하면
대웅전 중앙에 비로자나불과 좌우에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모신 절도 있습니다.
유명한 구례의 화엄사 대웅전에도 삼존불상이 있습니다.

삼신불은 석가모니 열반 후 육신은 사라졌어도 설법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법신, 보신, 화신으로 나눈 여래상입니다.

다시말해 부처의 몸이 다양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인데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수행과 공덕의 존재인 '원만보신 노사나불'
현실적인 존재 화신인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큰 절일 수록 대웅전, 극락보전, 비로전, 약사전, 지장전 등 부처님과 보살님을 따로 모시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5대 사찰처럼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절에는 대웅전에 부처님 좌상을 따로 안모시고
방석만 있고 그 뒤에는 사리탑이 있는 절도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적멸보궁이 있는 국내 5대 사찰은 다 가봤는데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고 가기 힘든 절은 설악산에 있는 봉정암 입니다.
제가 갔을 당시는 1998년도 여름에 갔는데,
백담사 밑에 주차를 하고 백담사를 거쳐 약 8시간 정도 산행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힘들게 올라갔지만 봉정암에서 맞이한 저녁공양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사실 반찬도 없었고 미역국에 밥만 있었는데요 '와 미역국이 이렇게 맛있는거였구나~' 하며 먹었습니다.
당시에는 저희 일행만 있었고 얼음장같이 찬물에 샤워를 하고 바로 잤습니다.
아침에 일찍 못일어나면 아침공양은 못먹는다고 하더라구요
아침에는 미역국과 오이무침을 받았는데 정말정말 맛있었습니다.

요즘은 사람이 많다고 해서 방문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적멸보궁이 있는 5대 사찰은 봉정암, 법흥사, 통도사, 월정사, 정암사가 있지만
이외에도 적멸보궁이 있는 절은 몇몇 곳이 더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께서는 출가하였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미륵부처님이 계신곳 윗동네인 새터에 살고 계셨으며
30년을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미륵부처님 불전에 청수를 갈며 모셨습니다.


미륵 부처님은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 우리 사바세계에 오실 부처님입니다.
'오는세계 사바교주 미륵불'
위에 나열한 부처님과는 달리 아직 오지 않으신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후 미래에 미륵 부처님이 오시기 전까지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중생이 구제되지 않는 한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원을 세운 지장보살도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모든 관세음보살상이 그런건 아니겠지만 관세음보살이 쓴 보관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는데요,
이는 관세음보살의 스승인 아미타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고 보면 됩니다.

관세음보살은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으로 중생을 구제한다고 일컫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라고도 부릅니다.

관세음보살은 12가지 명호로 불리우는데요
군시절 대대 불교군종을 지내며 700페이지가 넘는 통일불교성전을 3번이상 정독했답니다
많이 까먹었지만요

반야심경의 구절에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라는 구절의 관자재보살 역시 관세음보살입니다.

천녀유혼이나 중국사극에서 염을하는 뽀예뿌로미도
이 반야바라밀입니다.

'색불이공공불이색 색즉시공공즉시색'
공즉시색이라는 영화가 있어서 기억은 하시겠지만
이 역시 반야심경의 구절에 있습니다.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라고 번역이 됩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할머니께서는 이천의 한 절에서 5년간 공부하고 수계를 받아 출가를 하셨는데,
당시 할머니께서는 한글을 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 절에서 마당을 쓸면서
주지스님께서 외는 경전을 한두 번 듣고 통째로 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월 초파일 때 축원문을 읽으시다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이따금 물어보시곤 했었는데요,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이건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당시 충주 신니면 원평리에 신륵사를 짓고 미륵석불을 모셨으며,
신륵사 법당에는 제 기억으로 약사여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있었고,
백중, 매월 초하루, 특히 사월 초파일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이 신자들로 가득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매년 신륵사에서 쓰일 사월 초파일 연등공양을 하기위해 연등의 핫핑크 꽃잎과
녹색 이파리를 손수 풀로 말아서 몇 백개의 연등에 쓰일 꽃과 잎을 만드셨습니다.
사월초파일에 절에서 보이는 아주 얇은 습자지로 된 연등은 일일이 수작업로 만드는 것입니다.
연등에 쓰이는 꽃잎과 녹색잎은 아주 여러장이 포개어 있는 상태로 구매하여
한장씩 떼어 수북히 쌓아놓고 하나하나 밀풀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합니다.

이로인해 매년 봄에는 어머니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는 항상 빨간색이였고,
저와 동생은 그 꽃입과 잎을 일일이 하나씩 포개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렇게 포개진 꽃잎과 잎은 박스에 차곡차곡 넣어 신륵사로 가져간 뒤
연등 틀(철사로 됨)에 한지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다시 풀로 이파리와 꽃입을 다시 수작업을 반복합니다.
그 뒤 철사나 끈으로 연등을 연등줄에 걸어야 하죠!

한번 쓴 연등은 재활용없이 사월 초파일 이후 어느정도 시간이 경과된 후
연등뼈대만 남기고 한지와 연등꽃, 잎은 다 뜯어서 없앱니다.

연등이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 필요한지라
지금은 플라스틱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당시 어릴적에는 그 많은 양을 개는것이 정말 불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역시 공덕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사월초파일 충주 원평리 신륵사에는 신자들이 엄청 났습니다.
그 많은 신자들을 위해 항상 마당에는 장작불에 밥과 국이 있던 게 기억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법당에 불이 나 법당안에 있던 것들은 다 타고 없어졌는데
조그마한(약 20cm) 나무로 된 석가모니 부처님 입상만 타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입니다.



외할머니의 법명은 미연스님이었고, 열반에 드신 후 일련스님으로 공덕비가 세워졌습니다.



사리탑

열반에 드셨을 때 사리가 엄청 많이 나왔으며 다른 스님들 말로는
성철스님보다 더 많은 사리가 나왔다고 들었는데요, 사리는 미륵부처님 옆길 사리탑에 보관돼 있습니다.

외할머니 관련된 재미난 일은 무수히 많으나 과학으로 증명 할 방법이 없어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원평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당시 참외밭이 엄청 많았습니다.
이 참외가 다 팔리지 않으면 밭을 갈아 엎는데요,
참외가 썩기 전에 할머니께서는 참외를 가져와 속을 다 파내고 염장했다가
겨울에 참외장아찌를 만드셨는데 이게 또 오이지와는 다른 식감이고 맛이었습니다.

지금은 참외 장아찌를 파는 곳을 보진 못했는데,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그 땅에 묻은 김치와 참외장아찌만 있으면 밥 두 공기는 뚝딱이었습니다.


원평리 미륵석불


충북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
머리 위에 팔각형의 보개가 올려져 있는 미륵석불이 있습니다.

지난 26일이 정월 대보름이라 어머니를 모시고 충주에 다녀왔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미륵 부처님과 대화를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부처님 뒤에는 오래된 거목이 있습니다.


부처님 발밑에는 돌이 있습니다.
돌은 위 아래로 밀리는데요
이 돌을 밀고 당기면서 소원을 빌어봅니다.
만약 미륵부처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준다면 돌이 밀리지 않고 딱 붙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근처에 가실 일이 있다면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은근 기대감이 부쩍 듭니다.


오랜 세월 돌이 밀려진 흔적이 보이시죠?
외할머니와 이곳을 찾는 분들의 흔적입니다.


어린 시절의 경치가 더 멋졌는데요
주변을 한번 둘러볼게요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맑은 날씨답게 코로나19도 얼른 물러났으면 하고 바랍니다.

반응형